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다시 봄이 왔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라던 신영복 선생님 말씀처럼 봄은 분명 또 다른 시작이지요. 봄 햇살이 바람 손잡고 소풍 나와 허겁지겁 헛배만 부른 삶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늘진 허기가 가십니다. 지난 주 휴일엔 손바닥 만한 마당 한켠에 쭈그려 앉아 어느새 자란 쑥을 한 소쿠리 캤습니다. 몸은 쭈그려 앉았는데, 마음은 어찌 그리도 편안하고 평화롭던지요. 잊혀 져도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싹을 올리는 그들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제철 음식이 따로 없다지만 봄에는 아무래도 봄나물이 제격이지요. 이맘때면 얼음이 박힌 흙살을 헤치고 제 힘으로 일어선 노지 쑥으로 된장국을 끓여 봄을 마십니다. 쑥 부침이나 튀김은 더 별미랍니다. 아무리 바빠도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지요. 쑥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부침용 밀가루를 반죽하여 몇 개씩 넣어 건져서 부침을 했는데, 그 맛이 참으로 향긋했습니다. 한 번쯤은 튀김가루로 튀기어 바삭함을 즐기기도 한답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봄철 간식으로도 만점이었답니다.

쑥은 참 신기하게도 캐고 나면, 또 그 자리에 어느새 자라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약용으로는 물론이고, 떡이나 생즙·차·목욕 등 이용방법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의하면, 쑥은 독이 없고 만성병을 다스리며 부인병에 좋고, 자식을 낳게도 한다니 얼마나 유용한 식물인지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도 흙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얼굴을 내밀고 잘 자라지요. 오죽하면 '쑥쑥 큰다.'는 말도 있을까요.

쑥은 우리 민족의 수 천 년 역사와 문화에도 나옵니다. 다 알다시피 단군신화에 등장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르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40여 종의 쑥이 있지만, 모든 쑥을 약재로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최근에는 효소를 담가 어린잎에 영양제로 사용하며, 병아리와 어린 돼지들에게 항생제 대신에 먹이면 면역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쑥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농사에까지 고루 유용한 식물입니다.

봄날 휴일에 느슨해진 마음으로 차 한 잔 기울이노라니 사면의 창으로 적막이 차오릅니다. 살랑살랑 치명적인 햇살에 깊게 패인 과거의 언어들조차 시간의 그물에 걸려있습니다. 무언가 모르게 하나씩 하나씩 느리게 심호흡으로 풀려나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물지 못해 두텁고 우둘투둘하던 것들도 스르르 평화로워지는 그런 봄입니다. 여기저기 젖빛으로 피어나는 목련꽃을 보면서 박지웅 시인의 ‘목련야구단’을 떠올렸습니다. <봄은 언제나 홈런이다. 담장 밖으로 넘어가니까 봄은 집념이 강한 팀이다. 9회 말 투아웃에 목련은 온다. 한 번도 봄이 목련을 포기하는 것을 본 적 없다. 타자 목련이 들어서면 경기는 반드시 뒤집힌다. 목련은 언제나 홈런이다> 우리 집 작은 뜨락에도 산수유와 청매화가 한창입니다. 수선화는 자잘한 야생화들의 수런거림에 노란빛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습니다. 쑥처럼 흔하게 돋아나는 일상의 근심 중에도 부드러운 바람과 화사한 봄꽃처럼, 그리고 쑥처럼 유용한 삶을 살아야지 살포시 다짐을 했습니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