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낯선 사람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 혹은 낯선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할까? 영화 <컨택트>(2016)는 이런 문제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 열두 곳에 찾아온 외계의 비행체. 세계 각국은 대혼란에 빠지는데 영화는 주로 미국의 대응을 위주로 진행된다. 비상사태이므로 준비된 매뉴얼에 의해 군사 당국이 대응에 나서고, 이를 돕기 위해 언어학자와 물리학자가 호출된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등장하고, 그것과 대응하여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 패턴의 전형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미국과 여러 나라들의 혼란과 군사적 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대응을 보여주지만 결국 외계의 비행체는 지구를 떠나간다. 그에 이르기까지 언어적 교류와 중요한 소통이 있었다고는 해도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밝혀지지 않는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하러 왔는지, 어느 정도의 위력과 문명적 진보를 이룬 존재들인지에 대하여 우리는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잘 떠나갔으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영화의 핵심은 외계 비행체와 그 안에 있는 존재의 정체를 밝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낯선 존재와 낯선 상황을 맞닥뜨린 인간들의 모습과 문제에 대해 더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미군의 군사 당국은 생소한 대상에 대한 공격적 성향, 소통에 대한 기대와 노력보다는 선입견과 조급한 결론짓기, 혹은 책임 회피나 타인에 대한 책임 전가, 보호 본능에 의한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태도 등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책임자는 현장이 아니라 모니터나 전화기 속에 있다. 아마도 대통령이거나 그의 핵심참모, 혹은 국방장관일 것이다. 그리고 베이스캠프인 천막 속에는 대령을 위시한 군인들이 있다. 정작 외계 비행체에 접근하는 사람은 언어학자인 루이스와 물리학자인 이안이다. 그 중에서도 루이스의 소통 노력은 눈물겹다. 오염을 막으려고 입은 겹겹의 방호복을 벗고, 투명한 벽에 손을 대고, 외계의 존재가 보내는 신호와 문자를 수신한다. 규칙, 상식, 안전 면에서 루이스의 행동은 위험천만하다.

그러나 루이스와 이안은 외계 문자를 통해 전혀 새로운 삶과 존재 방식, 시간과 기억에 대한 패러다임을 배우게 된다. 시간은 선형적으로만 진행하지 않으며, 기억 역시 과거에 속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아주 분명하지는 않지만 외계의 존재들이 지구에 온 것은 무기를 통한 공격이 아니라 선물을 주려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 역시 그렇지 않은가. 저마다 설정한 투명한 경계선 안에서 안전하고 적절하다고 확인된 사람들과 만나며 적정선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어쩌다 낯선 상황이나 생소한 사람이 이 경계선에 가까이 오거나, 설정한 범위를 넘어 들어오면 보호적이고, 방어적이거나 혹 공격적이고 폐쇄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개방하지 않을 때, 소통하지 않을 때 삶은 구태의연하며, 존재 방식은 새로운 진경(進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도리어 강경한 경계 의식과 폐쇄적 태도는 갈등과 분열을 낳게 되고, 우리 안의 열정과 에너지를 헛되이 소모하게 될 수도 있다.

봄이다. 집 안의 창을 열듯이 공고한 마음의 창, 관계의 창을 열고 나와 다른 존재들의 생각을 듣자. 그들의 삶의 목소리를 듣자. 그리고 나의 말도 들려주자. 그리하여 소통이 가져오는 선물을 누리자.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