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은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여성의학센터 교수

어느 해 연말이었다. 40세에 체외수정으로 어렵게 임신에 성공한 환자가 임신 13주차에 발생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원하였다. 사고 직후 아기가 걱정되어 제일 먼저 산부인과에 내원하여 검사를 받고 태아의 안녕을 확인하였지만 문제는 그 이후 부터였다. 목, 어깨, 허리, 골반통증으로 낮에는 활동하는 것이 불편하게 되었고, 밤이면 통증이 심해져 깊은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임신 초기여서 검사도 치료도 받기 어렵다는 생각에 집에서 찜질만하다가 침 치료라도 받으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하여 사고 발생 며칠 후 본원에 내원하게 되었다.

임산부는 교통사고 발생 시 태아의 건강을 염려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고 검사를 받지만, 임산부 본인의 진단과 치료에는 제한점이 있다. 임산부의 외상에 대한 방사선 검사는 임신주수, 태아에게 전달될 방사선의 양, 산모의 수상 정도 등을 고려하여 시행한다. 통상적인 검사로 인한 방사선노출은 0.3~0.5rad 이내이며 촬영방식에 주의하면 태아에게 큰 영향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유산이나 기형발생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치료에 있어서도 전기적 자극의 물리치료 및 항생제, 진통제 처방에 제한이 있어서 환자가 사고 후에도 통증 등을 감내하며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기존에 여러 논문에서 임신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경항통, 요통, 골반통 등의 증상에 침구치료, 한약치료 등이 효과를 보인 것으로 발표된 바 있다. 또한 본원에도 매년 약 50명의 임산부 교통사고 환자들이 염좌로 인한 근육관절통, 사고 후 불안, 불면, 두통, 배 뭉침 등을 호소하여 내원하는데, 한방치료 후 호전된 다수의 사례가 있어 임신 중에 안태(安胎)를 목적으로 하는 한약처방과 통증관리를 위한 부항, 침, 약침치료가 임산부 교통사고 환자의 임신 중 관리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산부 교통사고 환자의 치료는 활혈(活血-순환을 원활하게 함), 유근(柔筋-근육을 풀어줌), 지통(止痛-통증을 줄여줌)하기 위해 침, 약침, 부항, 추나, 한약처방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우선적으로 안태(安胎-태아를 편안하게 하고 유산을 방지함)를 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임산부 교통사고 환자들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임신 중에 침을 맞아도 되느냐, 한약을 먹어도 태아에게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임산부 교통사고 환자의 침구치료는 임신 중에 시술을 금지하는 혈 자리를 제외하고, 증상에 따라 자극의 정도나 침놓는 시간을 조정하면서 통증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시행한다. 약침요법은 보통 근골격계 통증질환에 광범위하게 사용하는데, 진통효과와 안전성이 확보된 약침액의 종류를 선택하여 근육 경결부위 및 통처 주변 혈위에 시술하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여 침을 맞기 어려운 임산부에게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임신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산모가 불안해하면서 통증으로 인해 불편감이 증가하고 때로는 태동불안이 생겨 유산의 징후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필자는 임신 중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내원한 환자들에게 태동불안을 치료하고 유산, 조산을 방지하며 태아의 발육을 양호하게 하는 安胎처방에 근육 인대를 강화시키는 약재를 추가하여 한약처방을 드리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임신 중에 약 복용을 꺼리는 환자들도 있지만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 충분히 설명드리고 투약했을 때, 환자본인이 증상이 완화되고 건강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회복이 촉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견배부 요배부 통증부위 위주로 적정한 혈 자리에 부항요법을 하거나 근막을 자극하여 근 긴장을 풀어주는 추나요법을 시행할 수 있다. 특히 증상에 적절한 스트레칭을 익혀서 임신 중 움직임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복하면 보다 빠른 회복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임신 말기에 발생한 교통사고의 경우는 분만과 출산 후의 조리까지 고려하여 잘 관리해주어야 한다. 임신 후반기는 구조적으로 허리에 부담이 많은 시기여서 치료를 함에도 호전이 더딘 경우가 많고, 출산 후는 릴랙신 호르몬등의 영향으로 인대가 늘어나기 때문에 교통사고 후유통증이 더해져 산후 관절통이 가중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 시기에도 적절한 한방치료로 후유통증을 예방 및 치료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다음 해 여름, 40세 임산부 환자는 건강하게 3.13kg의 남아를 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고령의 임신으로, 입원치료 후에도 오랫동안 통증과 유산증후가 지속되어 한동안 외래치료를 받던 환자여서 출산 소식은 더욱 고맙고 반가웠다. 임신 중에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고생하시는 환자분들이 적절한 한방치료를 받아서 엄마와 아기가 모두 편안한 임신기간을 보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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