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입춘 다음 날 비가 내렸다. 그러니까 분명 봄비였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일기예보는 다시 강추위가 온다고 들썩인다. 우리 집 쪽 마당에 청매화가지마다 꽃봉오리들이 봉긋봉긋한데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일주일에 두어 번 받는 편지가 있다. 의회사무실에서 일하는 젊은 여 주무관이 ‘지역 주요 여론동향’ 이란 자료와 함께 업무메일로 짤막하게 보내주는 글이다. 일에 치여 마음의 여유조차 못 잡고 있을 때, 잠시나마 숨을 고르며 생각할 시간을 쥐어주는 고마운 편지다. 나는 어쩌다 한 번 회신을 할 뿐이다. 자신의 업무와 연계해 누군가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그녀만의 배려와 편지를 쓰는 그 마음이 참 아름답다.

얼마 전에 영화 <아이큐>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 편지를 받았다. <물리학자로 나왔던 맥라이언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사이에 거리가 1m쯤 되는데, 한 걸음 다가가면 50cm로 좁혀지고, 무한대로 좁힐 수는 있지만 끝까지 0은 될 수 없어요.”> 그렇다. 열 달을 품어 낳은 자식과의 거리도 그렇고, 한 이불을 덮는 사람에게서 벽을 느낄 때가 있다. 2에서 1을 빼면 당연히 1이다. 그런데 1과 2사이엔 1.00000001부터 0.99999999까지 무한개의 숫자가 존재한다 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떻겠는가.

어느 날엔가는 <이 세상에서 딱 하나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이런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라며 물어왔다. <영하로 떨어진 온도계의 수은주를 끌어올릴까, 통장에 슬쩍 ‘o’두개만 그려 넣을까.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참으로 매력적인 상상 편지가 아닌가.

그녀의 얼굴은 알지만 친분은 없다. 그런데도 그녀의 편지를 받으면 막역한 사이처럼 반갑다. 생각해보니, 손 편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짧은 문자로 대신하거나 ‘요즘 같은 세상에 이해하겠지’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한다.

얼마 전, 이색적인 기사를 읽었다. <특별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 느린 우체통> ‘1년 후,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느린 우체통’이 그 것이다. 느린 우체통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인에게 기다림과 손 편지의 향수를 알게 해주기 위해 마련된 우체통이란다. 우체통이 있는 곳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엽서에 사연을 적거나, 자신이 준비해온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 적어둔 주소로 배달해 준다. 2009년 5월, 영종대교 기념관에 처음 설치됐다는 데, 나에겐 이번 기사가 새삼스러웠다. 북악팔각정, 전남 가거도, 창원 주남저수지 전망대 등 전국 약 50여 곳의 관광명소에 설치되어 있단다.

편지는 따스한 삶의 무늬다. 바쁜 일상에서 따스한 마음 한 자락을 전해 주는 그녀의 짤막한 사연을 삭제 하는 것이 미안하고도 너무 아쉬워 인쇄하여 보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낸 그 녀의 체온까지 출력할 수는 없다. 날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바람과 햇빛이 반복해서 지나간다. 시간은 보이지 않게 무량으로 흘러간다. 구정이 지나고, 진짜 새해가 된지도 몇 주가 지났다. 손 편지가 아니어도 좋다. 머지않아 다가올 따스한 봄날의 강물처럼 누군가에게 부드럽고 막힘없이 편지 한 통 써 보는 것은 어떨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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