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대한민국이 새해 벽두부터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국내외적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초래한 외교안보분야마저 사면초가이다. 모든 것이 답답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특검이나 헌재의 행보도 본격화 되고 있지만 등장하는 궤변논리에는 국민들이 할 말을 잃고 있다. 이런 파국을 초래한 자들은 하나같이 모르는 일이며 기억이 나지 않으며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하니 도대체 사회정의가 무엇인지 가치관마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꼬여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형국이 지속되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멍멍하다. 책임을 져야할 정치권은 책임은커녕 적반하장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참으로 치졸하고 무책임한 모습들이 국민들에게 여과없이 전달되고 있다. 아무런 감동이나 감흥도 주지 못하는 생명력을 잃은 공허한 언어만이 난무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이 이들을 믿고 정치가 잘되기를 기대했는지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올시다!’이다.
중국이 사드문제로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불이익과 제재를 가하고 있고 일본마저 소녀상문제로 자국대사를 귀국시키는 초강경모드를 보이고 있어 상호 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새로운 트럼프시대를 맞아 이른바 환율조작국, 무역불평등 국가로 지목해 경제적인 기존 틀을 깨고 완전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식의 급격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으로는 대남강경자세를 일관되게 지속하고 있는 북한정권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도발이 잠재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동서남북의 주변국들이 대한민국을 한 가운데에 놓고 옥죄고 있어 그 답답함이 너무 심하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이 정도로 추락했는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남의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과 보호벽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을 때 우리는 최순실이라는 강남아줌마의 치마폭에 쌓여 농락된 국정의 아픈 상처를 들춰내느라 국력을 소모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 아닌가. 우리 국민들이 왜 최순실이라는 여자 때문에 고통을 겪고 이처럼 몸부림을 쳐야 하는지 누군가 답을 해야 한다. 아니 자기가 무엇이고 누구이기에 나라를 이처럼 농단한단 말인가. 무슨 자격으로 말이다. 그것도 민간인 신분으로 말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여자는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 이런 여자를 국정의 중심에 놓고 나라를 이른바 물 말아 먹도록 한 대통령을 비롯한 비호 권력들은 100% 이상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이런 여자에게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한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도덕불감증과 아전인수, 구밀복검, 양두구육, 사오정 같은 허상들의 모습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를 날이면 날마다 밤낮으로 질리도록 보고 듣고 있다. 거짓으로 포장된 가소로운 변병과 궤변, 침도 바르지 않고 해 대는 거짓말의 향연에 우리 사회 지도층의 비겁함과 비굴함을 엿보게 되어 참으로 역겹다.
정치권들은 이런 헝클어진 나라에서 진정한 리더의 탄생을 갈망하는 국민들에게 중량감이나 새로운 미래비전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다. 국가의 백년대계와 미래비전을 위해 움직여야 할 개헌과 같은 중대현안조차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이해득실 전략만 넘쳐날 뿐 국민을 위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너도나도 대선에 출마한다며 군웅할거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 난국의 시대 국민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권력 집착욕만 커지는 듯 보여 국민들의 자괴감만 커져 가고 있다.
이 시대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참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 모습을 보고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근혜대통령이나 최순실 강남아줌마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이나 긍정,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 세계에서는 박근혜대통령 같다거나 최순실 같다고 하면 울음을 터트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이들조차 이들을 닮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싶다. 일반인들 사이에도 대통령이 꿈에 나타나면 로또 복권이라도 사고 싶지만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개꿈이다, 재수없다’며 비아냥거린다.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견강부회(巧言令色)로 제 아무리 변명을 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해도 이미 국민 대다수는 행간의 뜻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반대급부로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 해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의와 부정부패는 우리 국민들이 바라고 나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먼저 겸허해야 한다.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을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기성세대로서의 성찰이 없는 한 우리 사회나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가득이나 어려운 새해를 맞은 국민들의 마음이 마냥 무겁기만 하다. 긍정의 새해를 맞이하길 그렇게 열망했건만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남남갈등을 촉발시키는 묘한 사회적 분위기마저 이어져 ‘안톤 슈나크’의 말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강조하건데 우리가 간직하고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관의 기초는 거짓말을 하지 말며 정의로워야 하며 부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들을 키울 때 거짓말을 가르치겠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기업의 총수들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수십억이라는 돈을 썬 듯 내놓고 좋아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도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수술비가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이 너무나 많다. 아직도 사회복지 사각지대에서 눈물짓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의료급여정신질환자들은 형편없는 진료비와 9년 째 동결된 식대비로 정말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 예산타령만 하며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려운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정부조차 진료차별을 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소외받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774억 원을 한번 기부해 보라. 많은 환자들이 좋은 약을 먹고 좋은 밥을 먹고 얼마나 빨리 치료되어 우리 사회에 복귀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겠는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벅찬 선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말 타는 부잣집 딸에게는 수십억을 쏟아 붓는 기업들이니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 고통을 받고 있고 눈물짓는지를 파악해 이런 곳에 쏟아 부어 보라. 그러면 국민들은 모두가 감동의 기립 박수를 보낼 것이다. 나아가 거짓말도 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신질환자들에게 30억 원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소아암백혈병어린이들에게 20억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독거노인들에게 50억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장애인들에게 100억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기아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에 1억 달러를 보냈습니다. 우리 기업이 노숙자들을 위한 자립기금 100억 원을 보냈습니다. 아동세대주에게 1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등등. 이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답고 정의로운 말이며 감동의 언어들인가를 생각해보라. 이것이 바로 정의로운 나라이며 정직한 사회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말들이다.
거짓말은 아무리 아름답게 말하고 포장해도 거짓말일 뿐이다. 그것은 정의로운 사회의 암적인 행위로 척결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하여 거짓말의 추악한 모습을 보며 정직한 사회 정의로운 나라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깨닫고 있다. 정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제 국민이 나서서 국민의 손으로 직접 조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거짓말로서는 결코 정직함과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는 교훈아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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