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이창호

평소 우리가 하는 말은 곧 예언이 되기도 한다. <억만금의 재산보다 한 줄의 예언을 물려줘라>의 저자이자 유명 강사인 로라 베스 존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에게 선언된 말에 의하여 살아간다. 말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인도하여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 우리가 자신에게 혹은 남들에게 선언하는 말은 곧 예언이 된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행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의해 우리의 미래가 좌우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만큼 우리의 말과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걸까?

일찍이 말과 행동의 중요함에 주목한 인물로는 우리나라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 있다. 당시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끈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신하들의 장점을 찾아 격려하여 그들의 말과 행동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게 했다. 세종대왕에게는, 자신감에 찬 신하들의 말과 행동이 곧 조선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젊은 군주였던 세종대왕이 풀어야 할 최우선의 과제는 노老대신들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일이었다. 세종대왕이 즉위할 때는 부왕인 태종이 상왕으로서 군사권과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상태였다. 세종대왕에게는 부왕인 태종에 밀려 2인자의 길을 걷는 것도,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고집하는 길재와 같은 신하들의 존재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보다 어려운 과제가 세종대왕 앞에는 놓여 있었으니, 그것은 세종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노회한 신하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었다. 고려 때부터 국가의 혁명과 건국 등의 대격변을 겪어낸 그들의 눈에는 세종대왕이 그저 책만 열심히 들여다보던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의 의견을 부지런히 묻고 경청하는 일을 그 해법으로 찾아내었다. 세종대왕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사흘 만에 “내가 인물을 잘 모르니 경들과 의논해서 벼슬을 제수하려 한다”라는 말로 신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종대왕이 즉위한 뒤에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 “의논하자”였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수시로 불러 들였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나라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또 신하들과 수시로 토론하다가도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곧바로 해당 부처에 명을 내려 시행하도록 조치했다. 세종대왕의 이러한 행동은 신하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심어 주었다.

또한 세종대왕은 벼슬에 사람을 임명할 때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왜 그가 필요한가’를 구체적으로 신하들에게 말하고 동의를 구하였다. 세종 시대에는 많은 신하가 과로사에 이르면서까지 맡은 일을 완수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 같은 일이 빈번했던 것은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보였던 인정과 두터운 신뢰 때문이었다. 세종대왕보다 28세나 연상으로 줄곧 ‘태종의 사람’을 자처하던 허조가 임종 때 “지금까지 나는 국가의 일을 나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며 살아왔다”며 “나와 같은 죽음은 아마 내 이전이나 이후에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행복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세종대왕은 경청에 능한 왕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지도자의 ‘덕목’이 아닌 중요한 ‘능력’이다. 요컨대 경청을 잘하려면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는 남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인내심이고, 두 번째는 유익한 이야기를 가려듣는 분별력이고, 세 번째는 믿고 맡기는 위임력이다. 세종대왕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였다. 또한 세종대왕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성들의 소리를 가장 가깝게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도 했는데, 경복궁 사정전과 경회루 사이에 작은 억새풀 띳집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동고同苦’ 정치를 펼친 것이 그것이다. 세종대왕은 당시에 가뭄과 역병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의지를 몸소 보여 주었다.

세종대왕은 진심으로 백성을 나라의 뿌리로 생각했고, 그들과 더불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이런 세종대왕의 여민與民 정신은 그가 행한 경청의 자세로 표현되었다. 지금은 국가의 위정자들이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시대이다. 국민들의 소리는 곧 국가의 정치 원리나 다름없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세종대왕이 행한 경청의 리더십을 진심으로 배워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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