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확실히 달라졌어요. 공기와 바람이. 미세하지만 느껴집니다. 나만 그런가 싶어 옆 사람에게까지 묻습니다.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구지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뭘까요. 말복이 지나고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면서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는 처서를 앞두고 있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더 자라지 않고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하니. 절기란 게 참 묘하다 싶다. 하늘은 점점 높아지겠지. 강물처럼 그리움도 깊어질 거야. 어쩐지, 시(詩)한입 베어 무니 눈물이 핑 돌더라. 가을이 오고 있는 것 맞다. 한여름 심벌즈를 난타하듯 금속성을 내며 찌르릉거리는 햇빛 속에서도 가을은 오고 있었던 거야.

가을이 오면, 절로 고운 시선을 살려내고 싶어진다. 무심함 때문에 잃어버린 일상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싶어서일 거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목하는 힘. 그것이 진짜 큰 힘이다. 주변의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시선. 나이 듦이라는 것은 늘 거기 있었지만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시선을 주어 즐거운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가을이 오면, 다독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라도 천천히 깊이 읽어야겠다. 천천히 읽지 않고서는 책의 봉인을 해제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 밀어 보기도 하고, 가끔은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깊이 빠져 있고 싶다. 그런 후에야 내 안으로 들어온 지식이 지혜가 될 테니까. 독서가 중요한 이유 또한, 새로운 시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시선의 변화가 제일 중요하다. 그 변화가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가을이 오면, 시(詩)를 많이 만나고 싶다. 세상의 작은 것, 사소한 것들에 따뜻한 눈빛을 던질 줄 아는 시인들의 시선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한 줄의 문장이 주는 위로와 쾌감을 아니까. <이도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시인의‘조용한 일’전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낙엽 하나에서 고단한 삶 위로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나이가 드니 심술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심술이 난다. 겁이 나는 것도 아닌데 겁이 난다. 비겁하게 아 숫자가 내 기를 수시로 시든 풀처럼 팍 꺾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시를 천천히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그대의 맑은 숨결이 향기로 와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 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호숫가 물결 잔잔한 그대의 슬픈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지나온 날에 그리운 그대의 맑은 사랑이 향기로워요. 노래 부르면 떠나온 날에 그 추억이 아직도 내 마음을 슬프게 하네.> 뭐냐 구요? 이문세의‘가을이 오면’ 노랫말입니다. 참 좋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가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지요. 천천히 와도 옵니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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