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1583년 4월, 조선의 병조판서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십만양병책을 주청한다. “나라가 태평하지만 군대와 군량미가 준비되지 않아 외적이 침입해 오면 막아낼 수 없으므로 미리 대비하여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태평시대에 평지풍파라고 생각하는 조정 대소신료들의 반대에 십만양병은 무산되었고, 9년 후인 1592년 4월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7년간의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한편,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영에 부임한 충무공 이순신은 일본의 심상치 않은 동향을 파악하고, 전쟁에 대비하여 물자 확보와 함께 거북선 건조를 착수하고, 본영과 각 진의 전쟁대비태세를 급속히 강화하였다. 1년여 짧은 기간이나 이 준비를 통해 이순신은 7년간의 전쟁에서 23전 전승이라는 세계해전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공을 세우며 조선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율곡선생의 10만 양병론이 받아들여졌다면, 충무공께서 준비할 기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역사는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은 전쟁만이 아니다. 재난이야 말로 더욱 빈번하므로 항상 대책을 마련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국어대사전은 재난(災難)을 ‘뜻밖에 일어날 고난과 재앙’이라고 정의한다. 즉, 재난은 그 자체가 예상치 못하게 불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요행수는 없고, 평시 철저한 예방과 대비만이 그 해결책인 것이다.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되었고, 멀리 에콰도르에서도 큰 지진이 발생했다. 평소 지진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다는 일본도 그 피해를 다 막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내 지진 발생횟수가 평년의 두 배 이상으로 급증하였으며, 2014년 4월에는 국내 기상 관측사상 세번째인 규모 5.1의 지진이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바도 있다. 서울에서 규모 7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27만 동 정도의 건물이 파괴된다는 민간 연구결과를 보면 그에 따른 인명피해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러한 지진에 대비 지난 5월 국민안전처는 관계부처와 함께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수립, 발표한 바 있다. 내진설계대상 확대, 민간 건축물 내진보강시 세제 혜택 등 많은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지진피해를 풍수해보험의 대상에 포함한 것 또한 의미 깊은 일이다.

풍수해보험은 개인이 소유한 주택, 온실 등에 대하여 국가가 보험료 중 절반 이상을 지원해주고, 국민이 보험료의 일부를 내어 재난에 스스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형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태풍, 홍수, 강풍 등 자연재난을 대상으로 풍수해 보험을 운영하여 왔으며, 이번에 지진을 포함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봄철에 잘 볼 수 없는 태풍급 강풍이 휘몰아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예상치 못한 재난에 풍수해 보험이 그 역할을 하였다. 주택 지붕이 날아가는 피해를 입은 경북 상주의 한 주민은 3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 1700만원의 보험금을 받게 되었다. 풍수해보험이 재난시 국민들의 피해복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여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던 충무공의 유비무환 정신을 본받아 우리도 재난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들께서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지진 및 자연재난 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비하여 풍수해보험에 가입하고, 재난에 준비해주시길 바란다. 향후 각종 자연재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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