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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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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7  15: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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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세상이 온통 꽃 천지였다. 시절을 당긴 색색의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 온갖 향기를 뽐내고 있다. 덕분으로 두 눈이 한껏 호사를 누린다. 사월은 벚꽃과 복사꽃이 흐드러지고 목련과 유채꽃이 마음을 적신다. 젊은 베르테르를 생각하며 사월의 노래를 부른다.‘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봄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힌다. 살아있음이 감동이다. 해외출장지에서 잠시 발열이 돋고 몸이 좋지 않아 이국 땅 병원에 눕고 보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약발(?)이 잘 받아 몇 시간 만에 병원을 나와 일정대로 귀국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했다. 출장지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하고 향기로운 분들이었다. 4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캄보디아 오지에 학교를 설립한 분들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뚜렷한 목표와 신념으로 여생을 불사르며 사람의 향기를 나누고 있었다.

20대 총선 날. 그 날은 친정 할머님 기일이었다. 쉬는 날이라서 모처럼 제사음식 준비에 끼어들었다. 올케들과 전을 부치다 말고 평소 할머님이 좋아하시던 꽃을 따다 화전을 부쳤다. 주홍빛 명자꽃, 분홍빛 복사꽃, 노란민들레와 유채꽃, 우유빛 배꽃으로 꾸며진 화전들이 오래된 대나무 채반 위에서 화려한 맵시를 뽐냈다. 함께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노라니 생전에 할머님의 향기가 곳곳에서 되살아났다.

삼월 어느 날인가 지인 두 분이 찾아왔다. 밥 한 끼 먹고 커피도 한 잔 하자고.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源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呼乎)라. 친구는 아니어도 좋은 분들이 찾아오니 즐거울 수밖에. 고즈넉한 식당에서 뜨락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밥을 먹었다. 노란 수선화는 활짝 웃고 있었고, 명자 꽃망울은 터질 것만 같았다. 맛깔스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평소 진한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그 날은 그냥 그렇게 진한 커피 향이 끌렸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한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 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나른한 오후, 사무실에 앉아 나에게 다가온 꽃잎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고운 빛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 본다.

여기저기 꽃향기 천지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라 했던가.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은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했다.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인향(人香)이 최고다. 사람의 향기는 그가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달렸다. 자기 내면에 피운 인화(人花)의 유형에 따라 내는 향기도 저마다 다르다.

꿋꿋한 지조를 가진 사람에게선 동백향이 나오고, 베풂을 실천한 사람이라면 진한 라일락향이 우러나고, 자기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에게서는 노란 민들레향이 느껴진다고 한다. 지천명(知天命)을 한참 넘긴 내 마음을 둘러보다 문득 나는 지금 어떤 향기를 피우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깊어가는 이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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