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30대 후반에 부부행복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매주 목요일에 몇 쌍의 부부가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토론을 했다. 부부생활을 하소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토론을 하다보면 새벽이 되기 일쑤였다. 지정해주는 책을 함께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여가 지나고 1박 2일 최종 워크숍이 있었다. 장소는 깊은 산속 한적한 기도원이었다. 무엇에 쓰일지 궁금한 도구들도 눈에 띄었다. 다듬이돌, 방망이, 군용 담요 등등. 어둠이 이슥해지면서 그 도구들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당시 50대 중년 부부의 상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으로 성인이 돼서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늘 주눅이 들어 있던 사람이었다. 진행자는 방망이로 다듬이돌 위에 군용담요를 힘껏 두드리며 죽은 아버지를 불러내라고 다그쳤다. “00야 내가 너 때문에 어른이 못되고 아직도 어른아이로 살고 있다”라며 한껏 소리치라고. 하지만 그는 끝까지 어떠한 작은 소리도 내질 못했다.

흔히 사춘기에 부모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끝내 어른 아이에 머물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부모를 딛고 넘어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줄 수 있어야만 진정한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걸 그 날 알았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가끔 그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이제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은 진정한 어른이 된 걸까. 오십을 훨씬 넘긴 연륜이지만 나이만 먹었지 실은 진정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언지 잘 모르고 산다.

스무 살이 되면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걸까. 19금 정보를 검색하고, 마음껏 음주와 흡연을 즐기고, 법적으로 부모의 보호나 동의가 없어도 많은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 어른의 의미일까. 누군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섬세해지는 것이라 했다. 사실과 사실 아닌 것, 사실과 망상, 사실과 집착, 사실과 환영 사이. 이 모든 현상 속에서 사실을 골라낼 줄 알아야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리코는 <사랑이 두려움을 만날 때>에서‘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가는 것과 되는 것(to go and to be) 두 임무가 있다. 성숙을 위한 첫 번째 임무는 도전, 공포, 위험 그리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김혜남은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서‘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는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또한 어떤 잘못도 용서받고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어릴 적의 기대를 포기하는 과정이다.’고 설파했다.

세상에는 무수한 종류의 어른이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각기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아니면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사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선과 악을 비롯한 다양한 힘들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안팎에 널려 있는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상대를 보호하면서 세상을 좀 더 재미있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어른다운 지혜와 처신이 무엇일까. 묻고 또 묻는다. 제대로 나이 든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자유로이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겁게 나이를 또 먹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따뜻한 엄마 손 같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이 잘 비벼져서 진정 맛깔 나는 그런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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