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출근길이 천근만근 무거울 때가 있다. 그런 날의 퇴근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인생도 무거워진다. 가끔 생각한다. 출근길 퇴근길이 매일 매일 다른 여행이라 생각한다면, 훨씬 덜 지치고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 차오를 텐데. 그런데 그게 어디 생각처럼 되느냐 말이지. 그래서 짧은 기간일지라도 힐링 할 수 있는 휴가가 필요하다.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때때 삶에 힘을 주니까 말이다.

30도가 훨씬 넘는 무더위가 이어지니 하루 빨리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어느 날은 지친 영혼마저 바꾸고 싶어졌다. 이렇게 다른 영혼으로 건너가고 싶을 때 나는 무조건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시기가 조금 늦춰졌다. 조금만 참자. 그러면 시간이 내게 온다. 그렇게 떠난 여행이었다.

아름다움이 과하면 나는 좀 고통스럽다 하면 누군가는 웃을지 모르겠다. 내게 계림이 그랬다. 하늘 아래 제일이라는 산수를 바라보며‘윽’가슴이 탁 막히기도 했고,‘아’하고 뚫리기도 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지역이며 중국 화폐 20위안 뒷면에 그려져 있는 그곳은 자연이 가장 위대한 예술품임을 실증해주고 있었다.

계수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계림은 웅장한 천태만상 석회암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비경이었다. 봉우리 봉우리 산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 얼마간의 소원쯤은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진기한 풍경을 가슴에 달고 나면, 무심히 시 한 자락 읊을 것 같아 마음이 벙벙해졌다. 그것이 가볍고 그것이 사무치게 자유롭고 좋았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느리게도 빠르게도 흐른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멀어지지만 우산처럼 기억될 시간들이었다.

여행을 할 때면 으레 노독을 풀기 위해 가능한 한 마사지를 받곤 한다. 그곳에서 만난 젊은 마사지사는 좀 남달랐다. 뭐랄까. 생선을 잘 발라내는 사람, 자유자재로 몸을 꽈배기처럼 꼬았다 풀어 놓는 사람, 그 사람은 그런 사람 같았다. 내 몸을 몇 등분으로 나누어 한 군데를 해결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손을 옮겨가는 솜씨가 절묘했다. 그 덕분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던 내 몸은 바람처럼 가뿐해졌다.

여행은 가슴에 명장면 하나쯤 간직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일상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저기 어느 한 켠에 있을 거라는 절대 믿음으로. 여행지에서는 마치 내 몸에 아주 미량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들뜨고 흥분된다. 작은 느낌들이 한꺼번에 광채로 다가 온다. 아무렇게나 살다가 그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로 인해 사람이든 풍경이든 그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사랑이 쓰다듬는 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것. 그것이 여행인 거야.

브하그완은 여행을 통해 낯선 곳에 대한 지식을 얻고, 먼 곳에서 고향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 했다. 이번 여행은 흐르는 시간도 흐르는 풍경도 여행자로서 참 괜찮았다. 매미소리는 아직 하늘을 가르고 있는데, 청사 뒤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가을이 그렇게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8월 내내 내가 붙잡았던 날들, 내가 잃어버린 날들, 내 팔을 빠져나가는 날들이 시간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지만 시간은 끊임없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억세고 거칠어서 마음을 도려내지만, 시간이 하는 일은 순하고 부드러워 그 도려낸 살점에다 힘을 이식해준다고 했던가. 시간은 또 순간과 순간을 모아 생의 근육이 되게 한다. 지금껏 나는 그 근육의 힘으로 버텨 온 것이다. 이제 달라지는 환경에 또 다시 적응해야만 한다. 여행을 떠나듯이. 집을 나서 일터로 가는 동안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매일 매일 다른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한다. 그래야 그것이 내 삶의 무지개다리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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