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며칠 전 퇴근하여 남편과 걷기를 했다. 장마철 무더위로 지쳐 있던 터라 그냥 눕고만 싶었다. 억지 춘향으로 끌려가다시피 했는데, 막상 걸으니까 좋았다. 모퉁이를 돌아 어느 지점에 이르니 노란 해바라기가 활짝 웃고 있었다.“아니 벌써 필 때가 됐나”혼잣말을 했는데“우리 학교 것도 벌써 피었다”며 남편은 즉시 대꾸를 했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삼 황홀하다. 오른쪽으로 휜 나선과 왼쪽으로 휜 나선의 작은 꽃잎들이 얽히고 교차하면서도 절대 겹쳐지지 않는 순간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읽혀졌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제 철을 만났다. 노란 해바라기 꽃은 태양신 아폴론을 사랑한 크리티의 불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도대체 그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강했기에 다리가 땅속에 박히는 것조차도 몰랐을까.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 꽃보다 선명한 사랑. 그래서일까 해바라기의 꽃말은 애모, 그리움, 기다림이란다.

해바라기 꽃은 내게 의미 있고 잊을 수 없는 희망의 꽃이다. 그러니까 그게, 교장으로 부임하던 첫 해였다. 학교가 있는 지역은 바다를 끼고 철철이 축제가 열리고, 해수욕장이 있는 소위 관광지였다. 부임하기 전, 한 여름에 학교를 노란 해바라기 꽃으로 만발하게 하리라는 꿈. 해바라기로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장면을 그리며 학생들에게 해바라기 노작교육으로 인성교육을 실천해 보리라 마음먹었었다.

부임을 하고 나서, 3월 초 어느 날 국산 해바라기 씨를 구할 수 없느냐는 말에 행정실 직원이던 K씨는“작년에 거둔 씨앗이 있으니 품어보겠다”고 흔쾌히 응해 주었다. 4월쯤 이르니 무려 천여 개가 넘는 포토에서 꿈이 움텄다. 하루하루가 기다림으로 설렜다. 드디어 오월의 마지막 주, 전교생이 교직원들과 함께 아기 해바라기들을 학교주변 곳곳에 일제히 심었다.

심고 가꾸는 재미는 해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꽃은 결코 그냥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 해 가을‘곤파스’라는 이름의 대형 태풍이 날아들었다. 그는 몇 십 년 된 나무들조차도 퍽퍽 쓰러뜨렸다. 그런데다 해바라기 안부를 말해 무엇 하랴. 태풍이 쓸고 간 교정은 쑥대밭이 돼버렸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날의 참담함은 지금까지도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결국 학교를 노란 꽃물결로 장관을 이루겠다던 꿈은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그늘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해바라기들이 겨우 살아남아 가을 날 늦게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아름다운 오류였다.‘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시구를 절감하게 해 주었다.

해바라기 노작교육은 3년이나 더 계속됐다. 그 후에는 해바라기 묘를 심을 구덩이도 크게 파서 미리 거름도 충분히 쟁여주고, 어떤 폭풍우에도 견뎌낼 수 있는 나름의 방책들을 강구했다. 다행히도 큰 태풍 없이 무사히 꽃들을 피워냈고, 그렇게도 바래왔던 해바라기 꽃이 노랗게 만발한 학교.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마냥 거저 얻어지는 것도 없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기약이 없는 인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밝은 해처럼 동그란 얼굴을 다소곳하게 숙인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교문 양쪽으로 나란히 서있던 해바라기들이 씨앗이 여물어갈수록 고개를 점점 숙이던 모습. 학생들이 등교하고 교직원이 출근할 때면 어김없이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고개 숙여 인사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해바라기는 내게 포기 하지 않는 꿋꿋한 희망의 상징이다. 누군가를 향해 돌고 도는 끈질긴 운명, 해바라기 씨 뒤에 숨겨진 촘촘한 기억, 더 높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비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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