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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보내며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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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16  16: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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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어느 날 우리 동네도 알몸의 나무들이 일제히 하얀 꽃을 피워냈다. 검은 몸속 어디에 저 많은 꽃 순을 숨겨 두었던 것일까. 서해안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는 언제나 다른 지역의 벚꽃들이 흩날릴 즈음에야 비로소 피워 올리곤 한다. 창경궁과 진해, 하동 쌍계사 십리 벚꽃 길, 순천 송광사 벚꽃 길, 충주호 벚꽃터널, 수안보 벚꽃 길, 경포호 같이 유명하진 않아도 숨겨진 벚꽃 길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주말, 금강 하구언 주변 벚꽃 때문에 발을 헛디뎠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마중하느라. 길바닥에 하얗게 누운 꽃잎을 밟지 않으려고 몇 번씩 휘청거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한 그 곁을 지나는 동안 한 무리 구름송이 같은 꽃들이 걸어가고 걸어왔다. 몸과 마음은 구름처럼 둥둥 떠갔다. 천지간에 벚꽃 가득한 봄날 오후. 꽃그늘 아래서 그 사람을 뒤돌아보며 저무는 하루처럼 웃었다.

이기철 시인은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으면‘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노래했다. 그의 시처럼 피워올리며 떨어지는 벚꽃 아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푹 빠져보았다.‘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웅얼거리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어떤 남자가 벚꽃 길을 걷다가 옆에 있는 애인한테 퀴즈를 냈다. 모르는 척 귀는 열어 두었다. 벚꽃 곱하기 벚꽃은 뭘까요? 그 남자가 급히 답을 했다.‘당신’이라고. 아~ 닭살이다. 그런데 그 애인이 얼마나 부럽던지. 거짓말이라도 그런 닭살 같은 답 한번 들어나 보고 싶은 봄이다.

일본 속담에‘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말이 있다. 꽃 중에서는 벚꽃이 가장 아름답고, 사람 중에서는 무사가 첫째라는 거다. 순식간에 폈다가 순식간에 지는 벚꽃처럼 죽음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정결하게 마무리하는 무사가 가장 훌륭하다는 뜻이겠지. 천하통일을 꿈꾸는 자들의 무대 뒤에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간 호소가와 가라샤의 사세구도 떠오른다.‘져야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 되고/ 사람도 사람이 된다. 벚꽃은 가장 극적인 낙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요절한 시인의 짧은 생애 같아서 언제나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한다.

어렵게 피워낸 꽃들이 만개하자마자 바람과 함께 달려온 봄비가 흔들었다. 여기저기서 벚꽃이 진다.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다. 그 환한 적막. 대궐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밀물처럼 순식간에 스러지는 모습. 그 순간의 한 모습을 오래 동안 붙들어 노래하고 싶었다.

하늘이 벚꽃으로 가득했다. 살아서 황홀했고 죽어서 깨끗한 벚꽃. 그 황홀함 속에서 아릿한 슬픔을 느낀다. 눈먼 그리움. 다시 사월이다. 한창 피어나는가 싶다가 벚꽃 잎처럼 떨어져 흩어져 버린 생명들이 화사한 슬픔으로 떠다니는 듯하다. 벚꽃을 보내며 흩어져 떠난 그들을 생각한다. 아픈 기억은 레테(Lethe,망각의 강)에 흘려보내야 한다. 허나 그것이 주는 교훈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월(思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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