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지난 주 어느 날인가. 오랜만에 지역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제자가 찾아왔다. 온라인에 밀려 이래저래 서점 운영이 어렵다는 푸념 섞인 말들을 늘어놓았다.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접목해보려 시도하고 있다는 제자가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론 대견했다. 가면서 책 한권을 놓고 갔다. 소위 요즘 베스트셀러란다. 1편은 분명히 읽었을 것 같아 두 번 째 나온‘현실 너머’편을 들고 왔단다. 그동안 책을 가까이 할 여유가 없었던 터라 책제가 낯설었다. 거기다가 1편은 읽었을 거라 짐작했다는 제자 보기가 머쓱했다. 책제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다른 책제에 비해 좀 길었다. 줄여서 <지대넓얕> 이라 부른단다.

요즘 젊은 층에서 특히 10대들이 말 줄임을 해서 사용하는 신조어들이 곳곳에 난무한다. 책제목까지 줄여 부른다니 간편하고 기억하긴 좋은데,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 옛날에는 짧은 말 속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 담겨 있었다. 지혜와 진리가 담겨 있는 속담이나 격언, 경구와 금언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기발한 말장난이나 낯선 신조어들이 분별없이 생겨났다 금방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일부 학자들은‘빨리빨리’의 단면으로 언어까지 절약하는 정신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혹은 커뮤니티 상에서의 유대감 때문에 등장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언어생활에 큰 혼란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완소(완전소중), 갈비(갈수록 비호감), 지름신(충동구매를 조장하는 신) 정도는 이미 익숙한 단어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외에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기포(기말고사를 포기하다), 까대기(이성 친구 사귀기), 정말?(레알?), 쩐다(대단하다), 생선(생일선물), 금따(금세기 최고의 왕따), 움짤(움직이는 사진), 핵노잼(엄청 재미없다), 앵까네(거짓말하네), 쏠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보듣잡(보도 듣도 못한 잡스러운 이야기). 물론 개중에는 요즘 사회 관심사를 보여주는 신조어들과 청년실업을 빗댄 슬픈 언어들도 있다.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자), 돌취생, 열정페이, 삼포, 사포, 오포세대 등 다 옮길 수가 없다.

며칠 전 종편 개그프로를 시청했다. 외계어를 듣는 것처럼 정말 알 수 없는 줄임말들의 신조어들이 넘쳐났다. 낄끼빠빠(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혼밥(혼자 밥 먹으러), SC(센척), 뇌색남(뇌가 섹시한 지적인 남자), 꼬돌남(꼬시고 싶은 돌아온 싱글남) 등등 처음 듣는 낯설고 엉뚱한 말 천지였다. 중학생들과 생활하는 남편은 그것도 모르냐며 우쭐한 듯 외계인 취급을 했다. 이렇게 같은 세대더라도 신조어를 발 빠르게 알아채지 못하면 뭔가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은 자격지심에 상대적인 소외감까지도 느끼게 된다.

팍팍해진 삶과 인터넷 확산 등의 이유로 다양한 신조어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사실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축이기도 하다. 10대들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엉뚱하게 줄여진 말들을 만나게 되면 참 당혹스럽고 걱정스럽다. 재미있고 독특해서 신기하기도 하지만 종잡을 수 없이 퍼져가는 잘못된 언어 사용은 큰 문제다. 일일이 규제한다는 것은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실생활에서 난무하는 신조어 사용을 줄이고, 바른 말 예쁜 우리말로 바꿔 사용하려는 자세와 교육적인 지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바야흐로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수류화개(水流花開)의 시절이다. 산과 들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봄이 깊어간다. 꽃이 피니 난데없는 벌들도 와글와글하다. 꽃이 있으니 벌 나비가 오는 건 당연지사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봄날. 난무하는 신조어 사용에 대한 공감과 실천의 새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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