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이어 대기업들이 고졸자의 채용을 늘린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더니 이번에는 공공기관도 고졸 채용을 확대한다고 밝혀 무더운 여름을 더욱더 시원하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고졸 채용을 확대해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는 고졸 채용 바람에 동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학력 지상주의로 변모해 개인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너도나도 대학에 들어가는 병폐아닌 병폐현상이 일어났다. 한마디로 좋게 말하면 고급인력의 양산이지만 이는 허울일뿐 고급인력의 과잉공급에 대졸자의 채용난만 부추기면서 소신 있고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가는 젊은이들에게 주눅이 들게 만드는 기현상만 초래했다.


그런데 재정부는 최근 한국전력, 기업은행, 한국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준 공공기관 등 30개 기관과 간담회를 갖고 고졸 채용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공공기관들은 채용 정원이 정해져, 고졸 출신을 늘리면 다른 쪽 정원을 줄여야 하고, 병원과 같은 전문적 지식을 요하는 기관은 고졸을 뽑기 어렵다는 애로사항도 있지만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는 이에 따라 각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직무분석을 통해 고졸 출신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를 조사하도록 요청했다. 재정부는 이 같은 고졸 일자리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8월 중 고졸 출신을 채용에서 우대하는 방향으로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을 개정할 방침이다. 현행 인사운영 지침 중 사회형평적 인력활용 조항에서 국가유공자, 장애인, 여성, 지방인재, 이공계 전공자 등에 대한 채용기회를 확대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고졸 출신도 이에 포함하여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니 환영한다.


재정부는 아울러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고졸 채용에 나설 수 있도록 고졸 출신을 많이 뽑은 곳에 대해선 경영평가 때 가점을 주는 방안 등 다양한 인센티브 방안을 논의중이다. 재정부는 또 형평성 차원에서 현재 논의가 되는 특성화고 출신뿐 아니라 일반계고 출신 역시 채용확대 대상에 포함할 계획이다. 공공기관은 직원 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두고 있지 않지만, 공공기관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고졸 출신은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사회에 진출해 경험을 쌓고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최근 사회 추세"라며 "공공기관마다 특성이 있어 일괄적으로 고졸 출신을 채용할 수 없지만 고졸 출신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조사해 고졸 출신 채용을 확대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고졸채용 바람은 은행에서 불었다. 국내 금융권의 사원채용에서 고학력 편중현상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국내 금융회사 창구직원의 고졸사원 비중은 한국이 34%로, 금융선진국인 미국의 83%에 비하면 대단히 고학력이다. 고졸사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를 대졸사원이 담당했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학력인플레 현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만성적인 학력인플레 현상으로 인해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면서 실업계 고교가 쇠퇴했고, 고졸 채용감소라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특히 은행권에서 고졸과 대졸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채용하면서 심화됐다. 그러나 다행히도 산업은행이 내년에 신입행원 150명 가운데 50명은 특성화고교 졸업생을, 50명은 지방대 출신을 뽑기로 했다. 지난 6월 기업은행이 창구직원 20명을 특성화고 졸업생을 뽑으면서 일어난 은행권의 고졸채용 바람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고 졸자도 얼마든지 대졸자와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토대가 마련, 고질적인 학력인플레를 치유했으면 한다.


최근 은행권이 학력 인플레이션과 고졸 취업 문제 해결을 위해 3년간 고졸 행원 2천 7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주요 대기업도 고졸 사원 채용 확대에 발벗고 나섰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LG는 하반기 대졸 1천300명과 기능직 2천 700명 등 4천명을 뽑는데 기능직의 50% 이상을 고졸 인력으로 선발한다. LG는 상반기 기능직 5천700명 가운데 3천명을 고졸 출신으로 채용했다. 하반기에는 LG디스플레이 1천300명을 포함해 1천600명을 고졸 인력으로 채울 예정이다. 올해 전체 기능직 8천400명 중 55%가량인 4천600명을 고졸자로 뽑게 된다. 포스코는 지난해 총 900명을 채용했는데 이 중 400명을 고졸자로 채웠고 올해도 900명 가운데 절반은 고졸 학력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12월부터 마이스터고 출신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하고 올해 마이스터고 1학년 채용예정자 100명을 선발해 이들에게 학업보조비 500만원씩을 주고 방학 중에는 현장 실습을 시킨 뒤 졸업과 동시에 입사하도록 추진중이다. 이처럼 고졸자의 취업증가가 고학력 지상주의를 타파하고 생산원가를 절약하며 취업구조를 개선하는데 일조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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