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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이야기충남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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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1  14: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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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이 빛을 잃는 11월의 마지막 주말. 낮게 내려와 앉은 하늘이 잿빛 구름을 안고 헤메이다 두두둑 시작하는가 싶더니 종일 비워 내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불청객 비님이 자주 찾아든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 했던가. 겨울을 재촉한다. 그 곱던 단풍잎들이 길을 한가득 메우고 있다. 잎사귀가 크고 화려하던 나무들은 거의 옷을 벗어 버렸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욕심 없는 마음이 되어야 한결 견디기가 쉽다는 듯. 마지막 잎사귀까지 털어내며 겨울 채비를 하는 나무 곁에 나도 한번 서 보았다.

가진 것 걸친 것 다 내려놓으니 가볍다. 눈치볼일 없으니 편안하다고 건네는 듯하다. 눈시울 붉혀 오던 가을 다 보내고, 목숨의 결을 흔들며 깊은 삶을 탄주하는 겨울 뿌리 깊은 나무. 그들은 찬 겨울을 버티기 위해 모든 수액을 안으로 당기고 보존하여 양분을 저장하고 힘을 기른다. 겨우 내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면을 더 충실히 단도리하는 묵언의 시간을 이어갈 것이다.

마지막 가을비라 해도 좋을 성 싶었다. 한낮인데도 저녁 같은 어슴프레한 휴일. 볼일이 있어 잠깐 집을 나섰다. 자동차 시동을 켜자마자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느낌 좋은 목소리로 수필 한편이 읽혀지고 있었다. 황동규님의‘겨울나무’라는 것을 즉감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던가. 그 수필을 읽으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던 때가. 어찌 그리도 간결하고 적절한 비유를 들어 겨울나무를 표현할 수 있는 건지. 경외스러움에 두 번 세 번 연거푸 읽었던 기억이 남자 아나운서의 명품 목소리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 작품을 만난 이후, 내겐 겨울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생겨났다. 맨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편안하게 서 있는 나무들에게서는 생략할 것을 다 생략한 어떤 엄격한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독특하고 서늘한 겨울나무의 매력에 빠져 한때‘겨울나무 단상’이라는 짧은 글을 끄적이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겨울나무는 속뼈까지 드러낸 내 그리움과 닮아 있어서 좋다. 그래서인지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을 보면 자꾸자꾸만 쓰다듬어 주고 싶다.

‘겨울나무’가 전하는 메시지는 마지막 문단에 있다.‘같은 겨울나무들도 서 있는 것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봄여름에는 별 차이가 없으나 겨울 덕수궁에서 보는 나무와 비원에서 보는 나무는 다른 것이다. 비원의 나무가 넉넉하고 편안히 서 있는 데 반해 덕수궁의 나무는 어쩐지 뒤틀리고 불안하게 서 있다. 주위의 소음 때문이 아니면 공기오염 때문일 것이다. 명동 구석에 박혀 있는 나무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잎을 두르고 있을 때는 비슷하던 것이 이처럼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별로 구별이 되지 않지만 일단 일을 그치고 겨울나무처럼 쉴 때 차이는 드러난다. 정신이 서 있는 곳에 따라 모습이 정해지는 것이다. 내가 쉴 때, 내 분위기는 어디 있는 나무인가? 혹시 비원의 나무인가, 덕수궁의 나무인가? 혹시 명동이나 충무로 구석에 궁상맞게 서 있는 나무는 아닌가?’

시처럼 아름답게 옛 이야기를 서리서리 풀어 놓는 겨울나무에게서 또 다른 인생의 비애를 읽는다. 이미 흘러가 버린 일에 대하여 후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음을 알게 하고, 새로운 것을 설계하기에는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던 11월. 그 가난한 달을 보내며 묻는다. 나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나무인가? 혹여 제 몸에 전깃줄을 칭칭 감아놓고 겨울밤에도 꽃을 피우는 나무들처럼 쉼 없이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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