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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8  15: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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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고 난 다음 해인가(?) 블루베리 어린 묘종 너덧 그루를 심었다. 안토시아닌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여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찾아 온 강추위에 얼어 죽고, 두 그루만이 어찌어찌 살아남아 깜냥 것 자랐다. 벌써 10여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주인을 닮은 건지 아직도 자태는 자그마하다. 다른 묘목들처럼 시간이 흐르면 몰라보게 자라나 어느 날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을 줄 알았다. 그런데 꽃은커녕 이삼년이 지나도 매냥 그 모양 그대로였다. 처음엔 땅이 척박해서 그런가보다 거름을 듬뿍 주어도 별 효용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무에 조예가 깊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블루베리는 전문 토양을 사서 두둑하게 덮어줘야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다. 2년생부터 열매를 따먹을 수 있고, 최소한 두 그루를 심어서 서로 꽃가루를 교환하게 해야 한다. 더욱이 땅은 산성이라야 잘 자란다는 그런 기본 정보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저 물주고, 거름만 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전용 흙을 사다 덮어줘야겠다 맘만 먹다가 또 세월을 흘러 보냈다.

그러던 차 2년 전인가 쪼매한 나무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게으름 피우다 피트머스 흙을 사다 준적은 분명 없는데, 조그마한 종 모양의 바나나 우유 빛 꽃들이 가지 끝으로 옹기종기 피어난 것이다. 사실 꽃이라 이름 짓기도 무색했지만, 맞지 않는 토양을 스스로 딛고 일어 선 그의 위대한 승리 앞에 절로 숙연해졌다. 저 꽃이 어떻게 블루베리로 변신해 갈 것인지. 기다리다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던 여름 날 드디어 잉크빛깔로 변해 있는 숭어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첫 수확이었던 셈이다. 몇 개를 따서 먹어보니 시큼 달큼한 게 사서 먹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 날의 생생하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3월말에 퇴근을 하려고 현관을 나서니 못 보던 화분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누군가 지킴이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블루베리 묘목을 심은 거란다. 다음날 우리 집 블루베리 사연을 들려 드리고 세 그루만 사 달라 부탁했다. 묘목만 사 주십사 한 건데, 바로 다음 날 제법 자란 묘목을 피트머스 흙에 심어 화분을 만들어 놓았다. 그로부터 몇일 후에는 어느새 꽃이 피기 시작한 블루베리 화분을 힘겹게 들고 올라오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사무실에서 열매가 달리고 익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라셨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것 중 꽃이 가장 많이 핀 걸로 골라 오셨단다. 10여년이나 기다려 잠깐 만날 수 있었던 블루베리 꽃을 사무실에서 매일같이 만나고, 서로 눈 맞추며 살게 된 것이다. ‘식물에 대한 성찰과 학문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이며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는 루소의 <식물사랑>이 불현 듯 살아났다.

우리 집 작은 뜰에는 한동안 뽐내던 꽃 잔디를 비롯해 지금 아주 예쁜 패랭이꽃과 낯익은 야생화는 물론, 라일락, 영산홍, 회양목, 단풍나무, 감나무, 매실, 소나무가 어울려 잘 살고 있다. 그동안 잎새마다 빽빽하게 에워쌌던 송홧가루 군단이 지난번 내린 비로 모두 철수를 하고는 참기름을 발라 놓은 듯 아주 반질반질하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블루베리와는 아주 특별해졌다. 그들은 요즘 하루하루 내 삶에 행복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10여 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주 기특한 블루베리. 거기다 새로 시집 온 새댁 블루베리들이 꽃을 피우고 꽃 지운 자리마다에 열매를 맺어 가고 있다. 그렇게 변신하는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른다.

출근을 해도 마찬가지다. 사무실 창가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블루베리가 오래전에 꽃을 지우고, 돋아난 열매를 잎새 사이에서 한참 살을 찌우는 중이다. 실내에 있다 보니 꽃들이 모두 열매로 거듭나지는 못했다. 지킴이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안에서는 아무래도 어렵게다며 자꾸만 집 마당에 가져다 놓으라신다. 그런데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어떻게든 사무실에서 잉크 색처럼 짙푸른 블루베리를 꼭 따 보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그에게 말한다. “블루베리야 너는 특별한 사명이 있는 몸이란다. 그러니 밖에 있는 그들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잘 자라 익어가야만 한다.” 나에게 주어진 큰 선물. 그들이 있어 오늘도 하루가 행복하고 삶에 윤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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