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사무국장
어렸을 적 추운 겨울날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는 사랑채 무쇠솥에서 밥을 푼 다음 소나무 껍대기처럼 거친 손에 쥔 놋숟가락으로 긁은 누룽지를 한 움쿰 내놓았다. “어여 먹어라, 내 새끼들 어여 먹어!” 그러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뒷곁 대나무숲의 사운대는 소리를 들으며 바싹바싹 부숴 먹는 맛이란 고소하기 그지 없었다. 요즘엔 전기밥통으로 밥을 하니까 솥바닥에 밥 탈 염려가 없다. 식당에 가면 타지않은 허옇고 마알간 누룽지를 내놓을 뿐. 더러 중국에서 수입한 누룽지를 내놓는다. 밥이 나오기 전에 동료간에 구수한 누룽지를 먹으며 구수한 대화를 나누는 재미는 나름데로의 낭만이 있다. 또 식사 후에는 눌은밥과 함께 한국식 후식인 구수한 숭늉이 나온다. 추운 겨울날 후룩후룩 눌은밥을 먹고 구수한 슝늉을 마시는 맛이란, 식당 아주머니의 따스한 인정이 다가오는 순간이다. 여기에서 대부분 눌은밥을 누룽지와 혼동한다. “아주머니, 여기 누룽지 주세요?” 누룽지는 솥에 눌러 붙어 굳은 밥이다. 그리고 눌은밥은 솥바닥에 눌러 붙은밥에 물을 부어 긁어 푼 것이다. 또는 눌은밥을 잘못알고 누른밥, 누린밥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외할머니 손등에 감긴/ 까아만 누룽지는 / 어느새 내 입에 감기고/ 대숲에 이는 초겨울 찬바람/ 잔눈발 눈이 시리도록 내리는 날/ 오, 고요로운 외할머니댁이여!‘(자작시 ‘외할머니 댁 일부중에서) 문학청년시절 굽 높은 구두에 장발, 분홍색 스카프에 청바지 시절. 통키타 하나 어께에 둘러매고 여름날 고향에서 가까운 대천해수욕장에 자주 놀러 다녔다. 이곳에서 소리쳐 불렀던 노래 중에 하나는 ‘조개껍질 묶어‘ 라는 노래였다. 젊은 날 바다에 흘려도 태평양만큼이나 많이 흘려보낸 추억의 노래였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룰루라라 / 불가에 마주 앉아 ~ 밤새 속삭이네 ~ 룰루라라 (中略)” 그 당시 흥겹게 추억에 어리도록 부른 노랫말이 이제와 생각하니 틀린 어법이라니?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다. 이 노래말 도입부의 ‘껍질’은 껍데기로 불러야 한다. ‘껍질’은 양파와 귤, 사과 등의 겉을 싸고 있는 층(켜)이고, ‘껍데기’는 달걀, 조개 등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이다. 그렇다면 어법에 맞도록 노래말을 이렇게 부를까? “조개 껍데기(?)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중략)” 노래흥행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노랫말 작사가 입장에서 보면 이럴 것이다. ”누구 노래 버릴려고 작정했시유?” 노래말이니 그려려니 하자. 이 유명한 노랫말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조개껍데기’보다 ‘조개껍질’ 이라고 하고, 달걀껍대기, 귤껍대기를 쉽게 달걀껍질, 귤껍집‘ 로 덩달아 부르고 있다. 제주도에서 좁살 가루로 만든 떡이 ‘오메기떡’이다. 좀오므라들게 만들어 온 떡말이란 뜻이다. 조껍질로 만든 술도 덩달아 ‘오메기술’이다. 언제부턴가 조를 갈아 만든술은 ‘조껍데기술이다’. 예전엔 조껍질로 만들어서 ‘조껍질술’이었지만, 요즘은 알갱이로 만든다. 그러니 ‘좁쌀술’ 이다. 또 ‘돼지껍데기’도 ‘돼지껍질’이라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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