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한국해외문화교류회 사무국장
호남벌 전주(全州)는 음식의 고향이다. 전주 비빔밥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 콩나물 해장국이 있다. 지난밤 마신 술독을 풀거나 쓸쓸한 속을 달래는 데는 이만한 효자음식도 없다. 우리가 해장국집에 가면 손님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주머니 여기 ‘멀국’ 좀 더 주세요!” 이와 비슷한 말로 ‘말국’이란 말도 종종 쓰인다. 그러나 ‘멀국’ ‘말국’은 표준어가 아니다. ‘국물’이라고 해야 맞다. ‘멀국’은 전라도나 충청지역에서 쓰는 방언(사투리)이고, ‘말국’은 경기, 충북, 경남 지역의 방언이다. 음식물의 ‘국물’은 ‘국, 찌개 따위의 음식에서 건더기(대부분의 사람이 ’건데기‘라고 많이 쓰는데 바른말이 아니다.)를 제외한 ’물‘을 일컫는다. 그런데 국에 들어간 고춧가루나 된장, 고추장, 마늘, 생강 다진 것 등을 ’건더기‘라고는 않는다. 그러므로 ’국물‘은 건더기가 우러난 물에 온갖 양념이 풀어진 것을 말한다. ‘멀국’‘말국’ 은 국물과 같은 뜻으로 해석되지만 약간 다른 느낌을 주는 말이다. 콩나물국이나 설렁탕, 곰탕의 국물처럼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우러난 맑은 것을 말한다. ‘멀-’‘말-’이 ‘멀겋다’ ‘말갛다’에서 온 것으로 보아 ‘멀국’ ‘말국’은 ‘멀건 국’ ‘말간 국’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영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 '존 맨'은 말했다. “대한민국의 한글을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글만큼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언어는 없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우리말을 모르고, 어찌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을까? 이러면 국물도 없는 민족이 될 수 있지?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그 해에 난 사물을 말 할 때 주로 접두사 해-/햇-이라고 한다. 해암탉, 해콩, 해팥/ 햇감자, 햇과일, 햇김, 햇나물, 햇밤, 햇벼, 햇병아리, 햇보리, 햇비둘기 등이 그의 한 예이다. ‘해-/햇-은 다음에 오는 말이 모음으로 시작하거나 첫 자음이 된소리나 거센소리이면 해-를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햇-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 해에 새로 난 쌀을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 원래 쌀은 ㅆ이 단어의 첫머리에 오기 때문에 해쌀로 사용해야 하나 쌀에는 ㅂ을 첨가해 햅쌀로 바른 표기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쌀이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시기는 단어의 첫머리에 ㅂ소리를 가지고 있는 ㅄ 이었다. 쌀의 어두에 ㅂ 소리가 있는 것은 송나라 때 ‘손목’이란 사람이 『계림유사』에서 쌀을 보살(菩薩)로 표기다. 그러므로 해ㅄ에서 ㅂ이 해의 받침소리로 나는 것이다. 찹쌀(차+쌀), 멥쌀(메+쌀), 좁쌀(조+쌀)‘ 등이 그 한 예이다. 그러면 그 해에 새로 난 포도나 포도주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앞의 말대로라면 ‘해포도, 해포도주라고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햇포도, 햇포도주라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새로 태어난 사람은 뭐라고 표현할까? 해사람, 햇사람, 햅사람? 아니다. 인간이란 명사 앞에는 그저 사람, 생명일 뿐이다. 해와 햇, 햅은 주로 곡식 같은 사물에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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