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2.jpg -이정용 방위사업청 기획조정관 -

문선(文選) 고악부(古樂府)에 보면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는 말이 나온다.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하는 인생 처세술로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당사자야 억울하겠지만, 애초에 의심을 자초할만한 행동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업무를 하다 보면 이 말을 떠올리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억울함의 호소가 반복될 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국가계약법에는 국가와 계약을 함에 있어 질서를 어지럽힌 당사자에게 일정기간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을 명시해 두고 있다. ‘부정당업자 제재’라고도 하는데, 제재 기간 동안에는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공기업이 발주하는 사업의 참여가 금지된다. 기업에게는 금전적 손실 뿐 만 아니라 신뢰성까지 잃어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방위산업은 정부가 유일한 수요자로서 제재를 위한 심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신중이 의심을 받고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작년에 어느 방산 대기업이 수입부품의 가격을 부풀려 검찰 수사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수사내용을 토대로 원가를 다시 산정해 보니 부당이득금이 67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당연히 부정당업자로 제재할 수 있는 사유다. 하지만 제재 결정을 보류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이유에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그 업체는 8,000억 원에 이르는 무기도입 계약을 정부와 체결했다. 불편한 의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원가부정으로 부정당업자 제재 시작을 하루 남겨두고 중도금을 지급한 경우가 있었다. 조사해보니 규정대로 집행했고, 비리와 관련성은 없었다. 하지만 도덕적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담당자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의심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부정당업자 제재의 반복되는 문제는 의심을 넘어 제재의 실효성마저 위협한다. 원가 부정으로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더 큰 벌칙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원가 부정이 끊이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기업이 진행하는 소송과 부정당업자 제재 심의는 별개이다. 그런데도 소송결과에 기대여 관성적으로 제재 결정을 보류하는 것은 신중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러한 결정이 된 것에는 아마도 방위산업과 방산업체는 보호 받아야 한다는 그 동안의 신념이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정부에 허위서류를 제출하여 납품가를 올리는 행위는 탈세 행위와 다름없다. 솜방망이 처벌은 고사하고 이를 휘두르지도 않은 모습에서 시장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정당업자 제재와 관련된 규정과 국민의 법 인식 사이에 많은 간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규정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제재될 것을 알면서도 제재 발효 전까지 계약체결을 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제재가 확정된 이후 즉시 효력이 발생되도록 하였다. 또한 제재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계약이행능력 심사에서 감점 점수를 높였다. 이와 함께 부정당업자에 대해서는 방산물자와 방산업체 지정을 취소하여 수의계약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오심이 없어야 제일 좋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심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오심을 이유로 재경기를 치룬 사례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심판이 패널티를 부여하는 데 신중을 넘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경기 자체가 진행되지 않을 것임이 뻔하다. 방위산업 개혁에 있어 부정당업자 제재의 신속함과 명쾌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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