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요즈음은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가 많이 눈에 뛴다. 보기도 좋다.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 365일 장애인의 날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부족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래서 평생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팔이 하나 없는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다. 이들보다도 멀쩡한 사람이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우리의 주변에는 종종 발생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그런 사람의 장애는 더 크고 그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다. 그런 면에서 지체가 부자유한 장애는 어찌 보면 장애가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버려야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 단지 몸과 지적능력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가치는 우주만물 중 인간이 가장 귀하다(宇宙萬物中 惟人最貴)는 옛말처럼 필설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부족하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이는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장애인 정책들을 내놓지만 늘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규정도 헛구호에 그치는 것이 여기저기서 노출되고 있어 안타깝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고용정책이다. 법에는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국가는 물론이고 지자체나 공공기간도 제대로 지키는 기관이 그리 많지 않다. 국가나 지자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그러하니 대기업이나 일반 기업, 그리고 사회단체는 더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이 단지 신체적 결함이 있다고 하여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소외받고 편견의 대상이 되며 인력고용이나 건물진입, 도로이용시 불편사항등 여가지 정책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일들이 그동안 많이 있어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쟁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이러한 장애인차별 정책들이 점차 사라지고 말이나 구호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어야한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250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에 이른다. 하지만 OECD국가 중 경제규모 대비 장애인 복지수준은 최하위이다. 이명박은 어제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연설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며 ‘우리 마음의 창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먼저 앞장서서 진심으로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지난해 도입된 장애인 연금제도의 미흡함을 보완하고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와 시설점검 정책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 포퓰리즘에 불과한 일회성 보여주기 정책보다는 복지 사각지대를 촘촘히 채워가는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이 시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복지의 패러다임은 무늬만 복지가 아닌 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따뜻한 복지’여야 한다는 자유선진당 임영호 대변인의 뼈있는 충고는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그만큼 큰지도 모른다.

요즈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들과 함께 기념하며 장애인들에게 봉사한 숨은 봉사자들을 위로.격려하고 표창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애인의 날에만 열리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된다. 형식적인 ‘장애인 날’ 행사에서 탈피해 장애인의 날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어야한다. 장애는 선천적인 장애도 있지만 산업장애, 교통장애,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 발생한 장애 등 후천적인 장애가 훨씬 많다. 인구 5000만명중에 1/20이 장애인이다. 한가족을 4인으로 기준하여 다섯가족중에 1명은 장애인이 있는 셈이다. 장애인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것은 꿈일 뿐이다. 우리들중에 누가 장애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내일이요. 우리일이며 우리가족이고 우리 이웃이다고 생각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이번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장애우를 위한 단체를 찾아가 봉사활동에 동참하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도 하나의 실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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